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생각이 났다.
우리 할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다. 우리 아버지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신다. 건설 현장의 하루는 아주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 아버지와 아침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할아버지는 꽤 늦은 연세까지도 노가다를 하러 나가셨다. 지금은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이 손수 지은 집에 살고 계신다. 가끔 할아버지를 뵈러 가면 빵꾸 난 난닝구를 입고 커다란 홀쏘로 쎄멘 공구리를 뚫고 계신다. 보일러 배관을 다시 까신다나 뭐라나. 할아버지는 정말 부지런하시다. 매일 일을 만들어서 하신다.
아비투스라는 개념이 있다. 살아온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형성되어 몸에 밴 태도와 성향을 뜻하는 사회학 용어다. 내 아비투스는 할아버지가 다니던 건설 현장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좋아서 가방끈을 길게 늘릴 기회를 얻었다. 학력이 올라갈수록 동창들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친구의 아버지는 교수였고, 어떤 친구의 부모님은 의사였고, 어떤 친구는 대대로 성공한 사업가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교 때 ‘기생충’을 보고 나오는데, 같이 본 친구가 자기네 집에 오던 가정부 이야기를 꺼냈다.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정말로 가정부를 쓰는 집이 있구나.
어떤 친구들은 몇십억씩 하는 서울 아파트에 산다. “너희 집 부자구나” 하면 꼭 “내 집 아냐~” 하고 대답한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사람들, 부모님이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되는 날을 걱정하는 사람들. 세상에는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친구들도 이런 삶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삶의 무게까지 공감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반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니까.
가방끈을 늘린 덕택에 나는 나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다다르고 있다. 박사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AI 전문가랍시고 블로그에 알아듣지도 못할 용어로 글을 쓰며 꺼드럭댄다. 얼마 전에는 프리즈 서울 오프닝에 다녀왔다.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저택에서 열린 행사였다. 유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예술 작품에 관해 여러 언어로 이야기하고, 바이어들을 만나고 있었다. 딱 봐도 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아하게 모인, 정말이지 고상한 자리였다. 나는 그 상황이 묘하게 우스우면서도 조금 슬펐다.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가 맞나?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 계셨다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강의할 때면 일부러 나 자신을 희화화하곤 한다. 밈을 쓰고 농담을 하면서 박사라는 직함이나 대학 강사라는 직업에 따라붙는 권위를 끌어내린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가? 전문성을 쌓는 일은 존중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자체를 더 대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구멍 난 러닝셔츠보다 빵꾸 난 난닝구라는 말이 더 좋다. 시멘트 콘크리트보다 쎄멘 공구리가 더 익숙하다. 아마 이것이 내 몸에 밴 아비투스일 것이다. 동시에 나는 논문을 쓰고 학술 용어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말이 다 내가 배운 어휘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서는 내가 쓰는 언어가 나를 설명하는 자격이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나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웃기는 일이다.
우리 엄마는 샴푸와 린스 통에 적힌 영어를 읽지 못해서 가끔 나에게 읽어 달라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영어를 못 읽어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런 엄마를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더 슬픈 건, 나 역시 그 시선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가 영어를 읽어 달라고 하시는 그 평범한 순간에조차, 엄마를 무시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선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망치로 잘못 때려 검은 멍이 든 할아버지의 엄지손톱을 볼 때의 기분을 기억한다. 엄마가 쿠팡에서 8천 원짜리 신발 산 걸 자랑하실 때의 기분도 기억한다. 아버지가 구조조정을 당하셨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다. 우리 아버지는 레미콘 기사다. 영화 속 설경구처럼, 우리 아버지는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혹 파업에도 나가신다. 누군가는 그런 아버지를 귀족 노조라고 욕한다. 어쩌면 내 친구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금전적으로 모자라거나 불행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 가족은 그렇게 살아왔다.
영화 속 조인성과 조여정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화가 났다. 특히 조여정이 가족들의 가장 연약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장면에서 그랬다. 누군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렌즈 너머에서는 그저 구경거리가 된다. 그 인물들이 우리 가족을 만난다면 어떨까. 할아버지가 빵꾸 난 난닝구를 입고 쎄멘 공구리를 뚫는 모습을 본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주 친절하게 대하겠지. 하지만 내 가족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화가 난다.
나는 내 가족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을까? 마치 이들이 존중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 가족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나도 사회적 지위와 태도로 타인을 판단한다. 참 이중적이다. 어쩌면 나는 그들이 우리 가족을 깔볼 거라고 미리 믿어 버림으로써, 그들을 먼저 깔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선이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은 몹시 불편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한다. 다른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가 살아온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아주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사랑일까?
Okda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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