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최근 여기저기 특강을 다니며 느낀 두 가지:
- 특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장벽을 넘을 수밖에 없다.
- 어려운 것은 어렵게 배울 수밖에 없다.
AI가 등장하고 나서 공부라는 것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은 좀 다르다.
OpenGL 수업 수강자 중 한 분이 두 이미지를 보간(interpolation)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요청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나 추상적인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점이 추상적인가? 예를 들어 보자. 이 보간은 어느 공간(space)에서의 보간을 이야기하는 걸까?
픽셀 공간? RGB 공간? HSV나 HSL 공간? 이미지의 위치나 크기, 회전과 같은 파라미터 공간? 각 픽셀의 대응 관계를 고려한 옵티컬 플로(optical flow) 공간? 푸리에 영역(Fourier domain)? 다양체(manifold)?
그 공간 안에서 취하는 경로는 어떻게 될까? 두 점을 잇는 직선 경로를 따라가는 걸까? 측지선(geodesic)을 따라갈까? 베지어(Bezier) 곡선 같은 경로를 따라갈까?
이 위치는 어떤 속력으로 변하게 될까? 각 성분을 같은 속력으로 움직이게 하는 걸까? 매 순간마다 다른 속력을 갖게 될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각적 결과물은 전혀 딴판이 된다. 그러니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지 않다면, 같은 도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결과물을 내기는 어렵다.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에이전트의 시대에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좋은 설명을 위해서는 결국 해당 문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수 주위에 존재하는 ‘이해의 아우라’에 대한 밈이 있다. 교수가 옆에 와서 설명해 주면 그 순간에는 완전히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교수가 떠나고 나면 똑같은 개념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해했다는 착각이다. AI를 사용할 때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 요즘의 나만 해도 그렇다. 어떤 어려운 개념에 부딪히면 AI에게 초등학생 수준으로 설명해 달라고 한 뒤 대충 읽고 치운다.
나는 어떤 개념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충 학습하고 나면 적용은커녕 똑같은 문제를 다시 마주했을 때 또 AI에 물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뇌에는 신경가소성이라는 성질이 있다. 이 성질 덕분에 우리는 뇌의 회로를 바꾸고 학습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회로를 바꾸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방법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이 스트레스는 자신을 한계로 몰아붙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불편함, 스스로 답을 떠올리려 애쓰는 시간, 실패한 방법을 되짚어 보는 과정과 같은 적절한 인지적 긴장에 가깝다. 우리는 설명을 듣는 동안이 아니라, 설명 없이도 다시 생각해 내려고 애쓰는 순간에 비로소 자신의 회로를 바꾸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학습의 장벽을 허물지 않는다.
예전에는 정보를 찾고, 문법을 외우고, 구현 방법을 알아내는 일이 큰 장벽이었다. 이제는 AI가 그중 많은 부분을 빠르게 처리해 준다. 대신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고, 주어진 답이 타당한지 판단하고, 여러 선택지 중 적절한 것을 고르고,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그 원인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두 이미지를 보간해 달라는 요청도 마찬가지다. 코드를 생성하는 일은 이전보다 쉬워졌지만,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보간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오히려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AI는 RGB 보간도, 옵티컬 플로도, 푸리에 영역에서의 변환도 구현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지금의 목적에 적합한지는 목적을 이해하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AI가 이 판단 능력까지 얻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데 있다. 설명이 매끄럽고 답변이 그럴듯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읽은 경험을 그것을 이해한 경험으로 착각한다. 교수의 설명을 들을 때는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지만, 교수가 자리를 떠난 순간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특정 수준에 도달하려면 그 수준에 걸맞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것은 여전히 어렵게 배울 수밖에 없다.
Okda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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