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며 성장하던 기업이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는 경우가 있다. 매출은 정체되고, 새로운 제품을 계속 내놓지만 예전만큼 신선하지 않다. 회사에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자본이 있고, 더 좋은 인재를 뽑고 있는데도 딱히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IT, 디자인, 콘텐츠, 패션처럼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산업에서 이런 일이 자주 보인다. 처음에는 분명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성공한 회사였는데, 이상하게도 회사가 커질수록 비슷한 것을 반복해서 만들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기업이 성장하며 혁신성을 잃는 원인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것을 공간의 문제, 매니폴드 이론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차원 데이터가 실제로는 훨씬 낮은 차원의 매니폴드 위나 그 근처에 분포한다고 보는 매니폴드 가설(manifold hypothesis)을 빌려, 사람의 생각과 취향 역시 어떤 고차원 공간 위의 벡터라고 가정해보자.

\[\mathbf{x}_i \in \mathbb{R}^D\]

그리고 실제로 가능한 생각들이 전체 공간을 균일하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낮은 차원의 구조 위에 모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mathbf{x}_i \in \mathcal{M} \subset \mathbb{R}^D, \qquad \dim(\mathcal{M}) \ll D\]

여기서 $\mathcal{M}$을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며 만들어낼 수 있는 생각들의 manifold라고 생각해보자.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공간의 비슷한 영역에 모일 것이다. 패션, 소프트웨어, 건축 분야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각각 어느 정도의 지역적인 분포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 공간에 새로운 위치가 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때 창업자의 위치를 $\mathbf{x}_f$, 기존 산업의 평균적인 위치를 $\boldsymbol{\mu}_{industry}$라고 해보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성공한 창업자는 어쩌면 기존 산업의 평균적인 위치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사람일 것이다.

\[\left\| \mathbf{x}_f-\boldsymbol{\mu}_{industry} \right\| > \epsilon\]

그 위치가 충분히 새로우면서도 사람들이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상품이 팔리기 시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기업은 성장한다. 그런데 기업이 성장하면, 그 기업의 생각과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애초에 그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원할 가능성이 높고, 회사 역시 자신들의 문화와 잘 맞는 사람을 채용하려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컬처핏이다. 채용될 확률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런 식일 수도 있다.

\[P(\text{hire}\mid\mathbf{x}) \propto \exp\left( -\frac{\|\mathbf{x}-\mathbf{x}_f\|^2}{2\sigma^2} \right)\]

창업자 혹은 기존 조직의 생각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조직에 들어올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은 자신이 처음 만들어낸 위치 주변을 반복해서 샘플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직이 탐색하는 아이디어의 범위 역시 점점 비슷해진다. 초기에는 이것이 장점으로 작동할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의사결정이 빠르고, 무엇이 좋은지에 대한 합의도 쉽다. 기업이 가진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기에도 좋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조직 내부의 생각이 점점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조직의 중심을

\[\boldsymbol{\mu}_{company} = \mathbb{E}_{\mathbf{x}\sim p_{company}}[\mathbf{x}]\]

라고 생각하면, 기업이 성공하고 자신의 문화를 강화할수록 구성원들이 이 중심으로 모여드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mathbb{E} \left[ \|\mathbf{x}-\boldsymbol{\mu}_{company}\|^2 \right] \downarrow\]

처음에는 남들과 달라서 성공했는데, 성공한 뒤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만 남게 되는 역설이 생긴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생각 $\mathbf{x}_A$와 $\mathbf{x}_B$를 섞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mathbf{x}_{new} = (1-\alpha)\mathbf{x}_A + \alpha\mathbf{x}_B, \qquad 0\leq\alpha\leq1\]

일종의 interpolation이다. 그런데 $\mathbf{x}_A$와 $\mathbf{x}_B$가 애초에 매우 가까이 있다면,

\[\|\mathbf{x}_A-\mathbf{x}_B\| \approx 0\]

아무리 interpolation을 반복해도 결과는 그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수가 열 명에서 천 명으로 늘어나더라도 그 천 명이 모두 비슷한 공간에 모여 있다면 탐색할 수 있는 영역 자체는 넓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성공한 기업들이 어느 순간부터 성장을 멈추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성장했지만, 생각의 분포는 오히려 좁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완전히 새로운 위치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기존 위치에서 extrapolation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mathbf{x}_{new} = \mathbf{x}_A + \lambda(\mathbf{x}_A-\mathbf{x}_B), \qquad \lambda>0\]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방향을 바탕으로 그 바깥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그런데 extrapolation은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특정한 영역만 오랫동안 탐색해온 조직이라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기존 조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현재 조직의 중심 $\boldsymbol{\mu}_{company}$에서

\[\left\| \mathbf{x}_{new}-\boldsymbol{\mu}_{company} \right\| \gg 0\]

인 사람을 의도적으로 조직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션 회사가 계속 패션 업계에서만 사람을 뽑는 대신 건축가를 데려올 수도 있고,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자와 기획자만 모으는 대신 심리학자를 조직 안에 넣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의 종류 자체라기보다 기존 조직과 얼마나 다른 위치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그러면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기존 조직을 $A$, 새롭게 들어온 사람을 $B$라고 했을 때,

\[\mathbf{x}(\alpha) = (1-\alpha)\mathbf{x}_A + \alpha\mathbf{x}_B\]

라는 새로운 경로가 생긴다. $B$가 충분히 멀리 있다면 이 interpolation 과정에서 이전의 조직이 한 번도 탐색하지 않았던 영역을 지나가게 된다. 이때 두 점 사이의 interpolation이 반드시 기존 조직이 점유하고 있던 manifold의 local region 위에 있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충분히 멀리 떨어진 두 위치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기존 조직이 점유하고 있던 영역의 바깥을 지나갈 수 있다. 내가 여기서 관심 있는 것은 바로 이 영역이다. 즉,

\[\begin{gathered} \text{Extrapolation from } A \\ \Downarrow \\ \text{Interpolation between } A \text{ and } B \end{gathered}\]

가 된다. $A$의 입장에서는 extrapolation이었던 영역이, $B$를 조직 안으로 데려오는 순간 interpolation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반드시 무에서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서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점을 찾을 수 있다면, 각각의 점에서는 extrapolation이었던 영역을 두 점 사이의 interpolation으로 바꿀 수 있다. 새로운 점을 직접 찾는 대신, 이미 존재하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점들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탐색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x축 가까이에 모인 기존 조직 A와 y축 가까이에 모인 다른 위치 B를 연결한 생각의 공간
생각의 공간을 x·y 좌표 평면으로 표현했다. 기존 조직 $A$ 안에서의 보간은 작은 영역에 머무르지만, 멀리 떨어진 $B$를 연결하면 두 영역 사이의 새로운 공간을 탐색할 수 있다.

이것은 예전에 내가 창의성을 서로 멀리 떨어진 개념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업의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사람의 종류도 달라질 수 있다. 초기 기업에서는 오히려 비슷한 사람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작은 조직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니까. 이미 새로운 위치를 찾아냈다면, 창업자의 생각에 강하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빠르게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이 충분히 성장한 이후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뽑는 것은 위험을 부른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계속 추가하는 것은 현재 조직이 점유하고 있는 manifold의 local region을 더 촘촘하게 sampling하는 일에 가깝다. 이미 충분히 탐색한 공간을 더 정밀하게 탐색하는 것이다.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필요한 사람은 기존 조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조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일 수 있다.

다만 단순히 다양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위치 $\mathbf{x}_B$의 사람을 데려온 뒤 기존 기업의 기준으로 계속 평가한다면,

\[\mathbf{x}_B^{(t)} \rightarrow \boldsymbol{\mu}_{company}\]

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원래 이렇게 한다”, “우리 브랜드와 맞지 않는다” 같은 판단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사람 역시 기존 조직의 평균으로 수렴하거나, 혹은 수렴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

따라서 다양성이 실제로 새로운 탐색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위치의 사람을 조직에 포함하는 것뿐 아니라, 그 위치를 유지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다양성은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특히 새로운 이미지와 생각을 계속 생산해야 하는 산업에서는 기업이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고, 따라서 기업의 생존 전략에 가까울 수도 있다.

성공한 기업은 자신의 성공 방식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그런데 그 반복이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조직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작은 영역에 점점 더 잘 fitting된다. 어쩌면 기업의 위기라는 것은 일종의 overfitting일 수도 있다. 과거의 성공을 만들어낸 작은 영역을 너무 잘 학습한 나머지, 그 바깥의 분포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같은 위치에서 더 좋은 sample을 찾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기업에 필요한 것은 더 닮은 사람이 아니라, 더 먼 사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