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복제는 예술 작품과 원본의 관계를 변화시켜 왔다. 사진과 영화는 작품을 특정 장소로부터 분리했고,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유통할 수 있게 했다. 디지털 기술은 이 과정을 더욱 가속했다. 디지털 이미지는 원본과 복제본을 구분하기 어렵고, 복제 과정에서 품질이 손상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이때 생산되는 이미지는 반드시 특정한 원본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동일한 요청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생성되며, 특정한 형식과 양식은 거의 무제한으로 변주될 수 있다.

그 결과 이미지의 공급은 빠르게 증가한다. 과거에는 높은 수준의 이미지를 제작하기 위해 기술, 시간, 노동이 필요했다. 이러한 조건은 이미지 자체에 일정한 희소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생성 비용이 감소하면 시각적 복잡성이나 완성도는 더 이상 희소성의 충분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특정한 표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이전보다 약한 차별점이 된다. 한때는 독특한 화풍이나 제작 기술이 작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생성 시스템이 다양한 형식을 빠르게 학습하고 재현할 수 있게 되면, 양식은 쉽게 복제 가능한 정보가 된다.

이것은 예술적 가치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치가 부여되는 위치의 이동을 뜻한다. 이미지 자체의 희소성이 감소할수록 이미지가 놓이는 조건이 중요해진다. 작품이 어느 장소에 존재하는지, 어떤 크기와 무게를 가지는지, 어떤 재료로 구성되어 있는지, 관객이 어떤 거리에서 그것을 마주하는지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디지털 파일 안에서는 제거되었던 조건들이 다시 전면에 나타난다.

이러한 조건은 일반적으로 물성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물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리적인 대상 역시 대량으로 생산되고 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력된 이미지, 공산품 형태의 조각, 표준화된 전시 장치는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성을 가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물질 그 자체보다 현존이다.

현존은 어떤 대상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물질뿐 아니라 공간, 시간, 신체, 상황이 포함된다. 작품을 경험하기 위해 관객이 이동해야 한다는 점, 작품과 관객이 동일한 공간을 점유한다는 점, 그 경험이 특정한 순간에만 발생한다는 점이 현존을 구성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장소를 가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어디에서나 표시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정한 장소와의 관계가 약하다. 동일한 이미지는 휴대전화, 모니터, 전광판, 인쇄물 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미지의 내용은 유지되지만, 그것이 나타나는 조건은 쉽게 교체된다.

반면 현존하는 작품은 조건으로부터 분리되기 어렵다. 공간의 크기, 빛의 방향, 재료의 표면, 관객의 동선이 바뀌면 작품도 달라진다. 작품은 독립된 객체라기보다 주변 조건과 결합한 사건이 된다.

이때 아우라는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아우라는 원본의 유일성, 역사적 지속성, 특정한 장소에 뿌리내린 존재 방식과 관련되어 있었다. 기술적 복제는 이러한 관계를 약화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 이후의 아우라는 과거의 원본성으로 단순히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생성된 이미지에는 반드시 최초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지의 계보를 추적하더라도 그것은 데이터, 모델, 확률적 과정의 복합적인 결과다. 따라서 앞으로의 아우라는 누가 최초로 이미지를 만들었는가보다, 그것이 어떤 조건 속에서 실제로 나타났는가에 의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현존의 아우라는 단순히 작품의 이미지 안에 저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과 장소, 관객, 시간이 결합할 때 발생한다. 전시를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은 그 결합의 일부만을 전달한다. 작품의 외형은 기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차지한 공간과 관객의 신체적 관계를 완전히 복제하지는 못한다.

이 점에서 설치, 퍼포먼스, 장소 특정적 작업은 생성형 이미지의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완성된 시각적 결과보다 발생 조건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작품은 관객이 방문하고 머무르고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도 성립한다.

이는 모든 예술이 물리적 형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작업도 현존을 구성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스템, 특정한 네트워크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사건, 관객의 개입에 반응하는 작업은 고정된 파일과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료가 물질인가 디지털인가가 아니라, 경험이 얼마나 조건에 의존하는가이다.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반복할 수 없는 작업은 사건에 가까워진다. 관객은 작품의 내용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발생하는 조건에 참여한다. 이 경우 작품의 핵심은 결과물이 아니라 관계의 배열에 있다.

작가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이미지 생산 기술이 보편화되면 작가의 차별성은 이미지를 직접 제작하는 능력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대신 어떤 장소를 선택하고, 어떤 재료를 사용하며, 어떤 규칙과 관계를 구성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작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이미지가 발생할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의 물질적 기반을 다시 드러낸다. 작품은 언제나 공간, 노동, 운송, 설치, 보존, 제도적 승인에 의존해 왔다. 디지털 기술은 한동안 이러한 조건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작품은 파일로 유통되었고, 화면 위에서 즉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 조건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서버, 데이터센터, 전력망, 디스플레이 장치도 물질적 인프라다. 디지털 이미지는 비물질적이지 않다. 다만 그 물질적 조건이 관객에게 직접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현존의 시대에는 이러한 조건이 다시 작품의 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전력 소비, 장비의 크기, 공간의 소유, 데이터의 이동 경로가 작품의 일부로 제시될 수 있다. 작품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미지가 가능해지는 물질적 체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현존의 가치가 증가하면 새로운 불균형도 발생한다. 물리적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 넓은 공간, 특수한 장비, 희귀한 재료, 전문 인력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대규모 현존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자본과 제도에 집중된다.

이미지의 생산은 민주화될 수 있지만, 이미지에 물리적 규모와 사회적 가시성을 부여하는 능력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도, 누구나 미술관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가상 공간을 설계할 수 있어도, 누구나 도시의 특정 장소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현존의 아우라는 순수한 미학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접근권, 소유권, 이동 가능성의 경제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어떤 작품이 현존할 수 있는지, 어디에서 현존할 수 있는지, 누가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는 제도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아우라의 귀환은 권력의 귀환이기도 하다. 과거의 아우라는 종교적 권위, 전통, 원본의 소유와 연결되었다. 현존의 시대의 아우라는 공간과 인프라를 통제하는 능력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작품의 희소성은 제작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에 배치할 권한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는 물리적 규모와 희귀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거대한 설치, 제한된 장소, 일회적인 사건을 통해 복제 불가능성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현존의 조건 자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방향이다. 작품이 어떤 자원과 제도 위에서 존재하는지를 노출하고, 그 접근 가능성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 현존은 단순한 고급 상품의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관객과 작품 사이에 특정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된다. 작은 공간, 일시적인 모임, 공동의 행위 역시 강한 현존을 만들 수 있다. 규모보다 대체 불가능한 관계가 중요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예술에서 이미지를 제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이미지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가 많아질수록 개별 이미지가 스스로 가치를 보장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때 작품의 질문은 달라진다. 무엇이 보이는가보다, 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가 중요해진다.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얼마나 정교한가보다, 어떤 조건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가가 중요해진다.

이미지의 시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미지가 더 이상 작품의 전부가 아니게 된다. 생성 가능한 것이 증가할수록 생성할 수 없는 조건이 드러난다. 장소, 시간, 신체, 관계는 파일처럼 복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반복될 수 있지만 동일하게 재현되지는 않는다.

현존의 시대의 아우라는 바로 이 차이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원본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무한히 복제 가능한 이미지가 도달하지 못하는 조건에 대한 인식이다. 앞으로의 작품은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은 그 이미지가 왜 이 장소에, 이 크기로, 이 시간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아우라는 작품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이 현실과 접촉하는 표면에서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