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OpenAI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밀레니엄 문제에 답을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히는 일반해를 구한 것이 아니라, 매끄러운 초기 조건에서 출발한 해가 항상 매끄럽게 유지되는지에 관한 오랜 질문에 특이점이 생길 수 있다는 방향의 답을 제시한 것이다. 나비에–스토크스는 현실의 유체를 다루는 방정식에 관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추상적인 수학 문제다. 문제의 정의가 명확하고,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으며, 제출된 증명이 옳은지 틀린지도 검증할 수 있다.

소용돌이치는 유체 위에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놓인 이미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3차원 해가 항상 존재하고 매끄럽게 유지되는지는 밀레니엄 문제 가운데 하나다. 출처: OpenAI

AI 발전의 알파고 모먼트가 될 것 같은 이 사건을 보며, xkcd의 ‘Purity’라는 짤이 떠올랐다.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차례로 놓고, 어느 분야가 더 ‘순수한지’에 대해 재치 있게 표현한 만화다. 이 짤방에서 사회학은 응용심리학이고, 심리학은 응용생물학이며, 화학은 결국 응용물리학이다. 순수함의 끝은 수학이다. 가장 추상적이고, 현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학문이다.

사회학에서 수학으로 갈수록 더 순수하다고 묘사한 xkcd 만화 Purity
학문을 현실과의 거리, 즉 ‘순수함’의 순서로 늘어놓은 만화. 출처: xkcd 435, Purity, Randall Munroe (CC BY-NC 2.5)

그런데 문득, 이 분야들의 역순으로 알파고 모먼트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은 AI에게 깨끗한 환경이다. 입력을 형식화할 수 있고, 규칙을 명시할 수 있으며, 정답을 검증할 수 있다. 1+1=2와 같이 참인 명제가 내일 다시 들여다봤을 때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틀린 접근은 언제든 버리고 완전히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충분한 연산 자원이 있다면 가설 생성과 검증을 매우 빠른 속도로 반복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상황이 달라진다. 단순히 변수의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첫째, 상호작용하는 동안 세계 자체가 변한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은 예측을 듣고 행동을 바꾸며, 사회는 새로운 기술과 제도에 반응한다. 어떤 규칙을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규칙이 성립하는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AI가 세계를 설명하고 개입하는 행위가 다시 세계의 일부가 된다.

둘째, 그 변화의 결과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수학에서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 뒤, 틀리면 즉시 같은 환경에서 다른 가설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세포가 실제로 자라야 하고, 사람이 실제로 살아야 하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실제 시간이 흘러야 한다. AI가 한 시간에 백만 개의 가설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10년 뒤에야 알 수 있는 결과를 한 시간 안에 백만 번 관측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의 알파고 모먼트는 학문의 순수성에 가까운 순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수학에서 시작해 물리학, 화학, 생물학으로 이동하고, 그 뒤에 심리학과 사회학이 오는 식이다. 순수한 학문이 더 쉽다는 뜻은 아니다. 추상적인 세계일수록 문제와 검증을 닫힌 루프에 가둘 수 있다는 뜻이다.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병목은 루프 밖으로 이동한다. AI가 더 빠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세계가 더 빠르게 답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한 자원은 계산량 자체보다 현실과 얼마나 빠르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가 될지도 모른다. 자동화된 실험실, 로봇, 고속 시뮬레이션, 디지털 트윈 같은 기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단지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이 AI에게 더 빨리 답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마지막 병목은 지능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