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현실, AI 시대의 병목
최근 OpenAI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밀레니엄 문제에 답을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히는 일반해를 구한 것이 아니라, 매끄러운 초기 조건에서 출발한 해가 항상 매끄럽게 유지되는지에 관한 오랜 질문에 특이점이 생길 수 있다는 방향의 답을 제시한 것이다. 나비에–스토크스는 현실의 유체를 다루는 방정식에 관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추상적인 수학 문제다. 문제의 정의가 명확하고,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으며, 제출된 증명이 옳은지 틀린지도 검증할 수 있다.
AI 발전의 알파고 모먼트가 될 것 같은 이 사건을 보며, xkcd의 ‘Purity’라는 짤이 떠올랐다.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차례로 놓고, 어느 분야가 더 ‘순수한지’에 대해 재치 있게 표현한 만화다. 이 짤방에서 사회학은 응용심리학이고, 심리학은 응용생물학이며, 화학은 결국 응용물리학이다. 순수함의 끝은 수학이다. 가장 추상적이고, 현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학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 분야들의 역순으로 알파고 모먼트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은 AI에게 깨끗한 환경이다. 입력을 형식화할 수 있고, 규칙을 명시할 수 있으며, 정답을 검증할 수 있다. 1+1=2와 같이 참인 명제가 내일 다시 들여다봤을 때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틀린 접근은 언제든 버리고 완전히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충분한 연산 자원이 있다면 가설 생성과 검증을 매우 빠른 속도로 반복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상황이 달라진다. 단순히 변수의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첫째, 상호작용하는 동안 세계 자체가 변한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은 예측을 듣고 행동을 바꾸며, 사회는 새로운 기술과 제도에 반응한다. 어떤 규칙을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규칙이 성립하는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AI가 세계를 설명하고 개입하는 행위가 다시 세계의 일부가 된다.
둘째, 그 변화의 결과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수학에서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 뒤, 틀리면 즉시 같은 환경에서 다른 가설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세포가 실제로 자라야 하고, 사람이 실제로 살아야 하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실제 시간이 흘러야 한다. AI가 한 시간에 백만 개의 가설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10년 뒤에야 알 수 있는 결과를 한 시간 안에 백만 번 관측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의 알파고 모먼트는 학문의 순수성에 가까운 순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수학에서 시작해 물리학, 화학, 생물학으로 이동하고, 그 뒤에 심리학과 사회학이 오는 식이다. 순수한 학문이 더 쉽다는 뜻은 아니다. 추상적인 세계일수록 문제와 검증을 닫힌 루프에 가둘 수 있다는 뜻이다.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병목은 루프 밖으로 이동한다. AI가 더 빠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세계가 더 빠르게 답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한 자원은 계산량 자체보다 현실과 얼마나 빠르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가 될지도 모른다. 자동화된 실험실, 로봇, 고속 시뮬레이션, 디지털 트윈 같은 기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단지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이 AI에게 더 빨리 답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마지막 병목은 지능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Okda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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