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거인의 어깨 위' 스테인드글라스
복음서 저자가 예언자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모습을 담은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거인의 어깨 위 난쟁이’라는 비유의 시각적 기원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아주 오랜 옛날, 컴퓨터의 태동기에 천공 카드라는 것이 있었다. 종이 카드에 구멍을 일일이 뚫어 컴퓨터에 명령을 입력하던 방식이다.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백, 수천 장의 카드를 순서대로 쌓아야 했고, 카드 한 장만 잘못 섞여도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의 개발자들은 기계의 동작 원리와 하드웨어의 한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했고, 거기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천공 카드를 다루거나 컴파일러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복잡한 과정을 도구에 맡긴 덕분에 우리는 그 위에서 더 크고 복잡한 시스템을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학생들을 멍청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런 걱정 때문에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AI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시대는 AI를 필수로 사용해야 하는 시대다. AI를 금지하면서 AI가 지배할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은 모순이다. 도구가 사고를 대신하면 인간의 사고 능력이 퇴화할 것이라는 공포는 기술 발전의 본질인 추상화를 간과한 시각이다. 과거의 프로그래머가 컴파일러를 믿고 고수준 언어로 넘어갔듯, 우리도 지능의 일부를 AI라는 도구에 맡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지능의 퇴화가 아니라,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층위가 이동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어떨까?

나는 컴퓨터 속 수많은 부품들이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든 디테일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별 문제 없이 컴퓨터를 사용해서 프로그래밍을 하며 먹고 산다. AI를 사용하는 것이 컴퓨터를 모르면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모두가 반도체의 원리를 알고 있는가?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AI는 인류가 쌓아온 지능과 데이터를 압축한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거인이다.

기초적인 자료 수집이나 단순한 초안 작성을 AI에게 맡기는 행위는 게으름이 아니라 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을 내딛는 과정이다. 밑바닥 작업에 소모되던 에너지를 아껴서, 과거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높이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AI라는 도구를 발판 삼아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다. 이제는 AI조차 풀기 어려운 문제, 즉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넘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에 집중해야 한다. 도구의 발달로 과거의 기술이 잊히는 현상은 퇴화가 아니라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화의 단계다. 우리는 AI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큰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