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예술을 대체할까 — 아우라에 대하여
2025년 11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AI 분야에서 요새 가장 핫한 개념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단연 ‘에이전트’다. 현 단계의 에이전트는 주로 프로그래밍에 특화되어, 스스로 워크플로우를 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외주 업체처럼 기능한다.
아마 곧 예술 분야에도 이 개념이 접목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예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할 수 없다면, 예술가들은 안심해도 좋을까?
오픈소스와 예술계
나는 학부 때 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스를 공부했다. 컴퓨터 공학을 배우며 가장 생경했던 것은 바로 ‘오픈 소스’ 정신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돈도 받지 않으면서 엄청난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깃헙에 공개한다.
반면 예술계는 어떤가?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예술계에서는 자신의 테크닉을 공유하는 것에 훨씬 더 인색하다. AI를 통해 누구나 멋진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프롬프트 테크닉’을 전수해주겠다며, 댓글을 달면 DM 주겠다는 인스타그램 포스트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우라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 차이가 예술 작품의 ‘아우라’에서 온다고 본다. 누구나 쉽게 생성할 수 있는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더 이상 ‘멋지지’ 않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신기함은 빠르게 사라졌고, 이제 지브리 프사는 엄마아빠 말고는 거의 쓰지 않는다. 복제 가능성의 증가는 곧 아우라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설령 AI 에이전트가 발전하여 레퍼런스 이미지만 던져주면 스스로 포토샵을 조작해 이미지를 완성해내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 이미지의 예술적 가치는 여전히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데이터의 문제
데이터 측면에서도 AI 에이전트가 예술적 생산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에이전트가 학습하려면 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추적한 정교한 워크플로우 데이터가 필요하다. 코딩 에이전트가 먼저 도입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로그래밍 작업은 모두 디지털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데이터화가 쉽고, 문서 자체가 가볍기 때문이다.
반면 예술의 워크플로우는 어떤가?
일단 데이터 확보가 난관이다. 누가 자신의 예술적 워크플로우를 공유하고 싶어하겠는가? 그건 내 ‘비법’인데! 특히 이미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예술적 대가들이 작업 과정을 돈을 받고라도 공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를 돈으로 사려는 겐가!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 데이터가 없다면 에이전트가 학습할 수 있는 워크플로우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데이터의 규격도 문제다. 예술 작업은 텍스트처럼 단일한 데이터 타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지, 영상, 소리, 재료, 공간, 맥락, 개인적 경험, 감정, 추상적 개념이 한데 얽힌 구조다. 이런 것들은 물리적으로 수치화는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적 판단의 ‘의미’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규격화되기는 어렵다. 아직 3D 데이터 하나도 OpenUSD로 통합하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예술의 모든 감각적·개념적 변수를 무엇으로 표준화하겠는가?
그렇다면 안심해도 될까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안심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예술계 안에서 데이터에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정말 독특하거나,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거나, ‘아우라’가 넘치는 작업을 매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대부분의 예술가는 기존 형식의 변주, 상업적 시각 작업, 혹은 반복적인 이미지 생산에 종사한다. 이 영역은 아우라가 필요하지 않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AI 에이전트가 압도적인 파괴력을 발휘한다.
아우라가 필요한 예술은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우라가 필요하지 않은 대부분의 시각 작업—브랜딩, 일러스트, 콘텐츠 이미지, 대중적 스타일, 장식적 비주얼—은 AI 에이전트가 훨씬 빠르고 저렴하며, 지루할 만큼 안정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즉, AI가 예술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해서 예술 ‘시장’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예술가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AI가 예술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인간 예술가들이 해오던 대부분의 일을 AI가 더 잘할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후자는 이미 답이 나왔다.
AI는 예술의 본질을 ‘아직까지’ 대체하지 못하지만, 예술가의 대부분이 수행해온 생산적 역할—이미지 노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할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창작 생태계의 재편이다. 아우라를 생산할 수 있는 극소수는 더 돋보일 것이고, 나머지는 에이전트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이미지의 파도 속에서 서로 구분되지 않는 형식으로 밀려날 것이다.
예술과 예술가의 미래는 이 두 층위—대체 불가능한 아우라의 층위와 완전히 대체 가능한 생산의 층위—사이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갈라질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 상황은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당장 떠오르는 방향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흐름에 순응하고,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더 효율적인 예술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 아마 가장 현실적인 방향이 아닐까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예술’과 ‘생산’이 어울리는 단어던가?
두 번째는 자신만의 ‘아우라’를 키워내는 것. 말은 쉽게 하지만 이쪽은 참 속 편한 소리이기도 하다. 그게 쉬우면 누구나 그렇게 하겠지. 그 과정은 무척 어렵거니와, 누구나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양쪽 다 명쾌한 답이 되진 않아 보여 유감이다. 그럼에도, 두 방향 모두에 희망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아마 대부분 양쪽 길 중간 어딘가를 걷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을 걷는 모든 예술 종사자들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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