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인류의 도덕적 진보가 만들어낸 위대한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냉정하게 역사를 되짚어보면, 민주주의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억지로 타협한 결과물에 가깝다.

근대 국가가 시민에게 투표권을 주고 복지를 제공한 이유는 명확했다.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울 ‘인간 병사’가 필요했고, 공장에서 부를 창출할 ‘인간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민의 말 한마디가 권력이 되었던 이유는, 그들이 집단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때(파업이나 혁명) 국가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다는 실질적인 위협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의 근간은 인간의 전략적 가치에 있었다.

하지만 AI와 로봇 공학의 정점은 이 필요의 사슬을 끊어버린다. 로봇 군대는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어떤 윤리적 가책도 없이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다. AI 자동화 공장은 인간 노동자 없이도 엘리트들이 누릴 사치재를 무한히 생산해낸다.

이 지점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대다수의 인류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무가치해지는 순간, 권력자가 시민의 눈치를 볼 이유도 사라진다. 민주주의라는 거추장스러운 합의 절차는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제거되고, 정치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에서 잉여 인류를 관리(또는 방치)하는 기술로 변질된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가 승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현대의 자본 시스템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숫자에 밝고 냉혹하며 타인의 고통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데 능숙한 이들을 상층부로 밀어 올린다.

성공한 경영진 사이에서의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 비율은 일반인의 최소 3~4배에 이른다. 호주의 심리학자 Nathan Brooks의 연구에 따르면, 고위 경영진의 약 21%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의 비율과 비슷한 수치다.

2011년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아마존의 물류 창고에서는 열사병 환자가 속출했다. 아마존에서는 에어컨을 개선하는 대신 창고 밖에 구급차와 구급대원을 대기시켰다. 그쪽이 더 저렴하니까.

선택된 엘리트들에게 인류애에 기반한 자비를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그들에게 대중은 더 이상 성장을 위한 파트너가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원을 축내는 비용일 수 있다. 자비는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오직 시혜만이 남을 뿐이며, 시혜는 주는 자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거두어들일 수 있는 유약한 권리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고도화된 형태의 디지털 봉건주의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 전인 지금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협상 기회일지 모른다. 기술이 인간의 손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기술의 소유권과 부의 분배를 인간의 생존권과 강제로 결합할 기회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 시기를 놓치고 기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완전히 장악되도록 방치한다면, 미래의 인류는 권력자의 자비에 목숨을 구걸하는 노예의 처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정치는 더 이상 누가 다스릴 것인가를 논하지 않는다. 권력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힘 앞에만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