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문턱은 낮아지지 않는다
2026년 3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최근 테렌스 타오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봤다. 그는 AI가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곧바로 수학적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성공률은 여전히 낮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해결이 새로운 개념이나 이해를 만들어내는지 여부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AI 도구들이 기존 기법을 폭넓게 적용하는 데에는 매우 강하지만, 부분적인 진보를 축적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는 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차이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논문은 더 풍부해질 수 있지만,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 구분은 비단 수학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영상 제작의 기술적 장벽이 매우 낮아졌다. 과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갖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장비, 인력, 시간, 숙련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영상미를 구현할 수 있고, 그 수준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이 변화는 표현의 민주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현상이 발생한다. 퀄리티의 하한선이 올라가면서, 퀄리티 자체는 더 이상 중요한 구분 기준이 되지 않는다. 잘 만들었다는 평가는 점점 설득력을 잃는다.
이 지점에서 취향의 문제가 등장한다. 여기서의 취향은 단순한 스타일 선호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기준에 가깝다. 과거에는 제작 비용 자체가 일종의 필터로 작동했다. 구린 판단에 기반한 작업물은 제작 비용 때문에 애초에 만들어지는 일 또한 드물었다. 그러나 그 필터가 사라져버린 지금, 판단의 문제는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AI 영상 도구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결과물은 기술적으로 흠잡기 어렵다. 구도, 색감, 전환, 리듬은 모두 안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경우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잘못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이유도 없다.
이런 결과물은 특정한 용도에는 매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관공서 홍보 영상 같은 것들이다. 메시지는 분명하고, 톤은 안정적이며, 불쾌감을 줄 요소가 없고, 누구에게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필요한 기능을 정확히 수행한다. 다만, 그 이상은 없다.
이러한 영상은 실패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이유도 함께 제거된다. 감정을 과도하게 건드리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며, 특정한 관점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전달된 정보뿐이다.
이 현상은 표현이 빠르게 평균으로 수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AI는 기존의 성공적인 패턴을 조합하고 최적화하는 데 뛰어나다. 그 결과는 안정적이고 재현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체 가능하다. 위험이 제거된 표현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의미 있는 작업이 이 평균에서 벗어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작품들은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 비효율적인 구성, 혹은 불필요해 보이는 요소들을 포함한다. 이런 요소들은 최적화된 생성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제거된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형성된다.
이는 영상 이론에서 말하는 연속 편집과 몽타주의 차이에 가깝다. 최적화된 흐름은 이해를 돕지만, 의미를 생성하지는 않는다. 의미는 오히려 장면과 장면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아주 슬픈 장면에서 흥겨운 음악이 흐르거나, 긴장된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긴 정적이 지속되거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 사소한 디테일로 시선이 이탈하는 경우다.
이 지점에서 선택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단순히 더 많은 장면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을 서로 붙일 것인지, 어떤 흐름을 일부러 끊을 것인지, 어떤 충돌을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로 이동한다. 다시 말해, 제작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의 문제, 그중에서도 몽타주적 선택의 문제다.
타오의 구분을 다시 가져오면, 현재의 도구들은 표현을 풍부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이러한 선택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더 많은 재료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재료들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지는 여전히 판단하는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에 있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끝까지 밀어붙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도구는 실행을 대신할 수 있지만, 선택의 기준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이 맥락에서 취향의 문턱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제작의 난이도는 극적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무엇이 의미 있는 결과인지에 대한 기준은 그에 맞춰 자동으로 낮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은 반대에 가깝다. 선택지는 늘어났고, 그만큼 선택의 책임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전에는 기술적 제약이 대신 해주던 필터링을, 이제는 개인의 취향이 직접 수행해야 한다.
결국 남는 문제는 동일하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여전히 느리게 형성된다.
기술은 점점 더 많은 장면을 만들어내겠지만, 어떤 장면을 서로 충돌시키고, 어디에서 흐름을 끊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앞으로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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