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 중단 문제란, 언제 멈추고 행동할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앞두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림에는 비용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

집을 살 때도 그렇고, 이직을 고민할 때도 그렇고, 투자할 때도 그렇다. 더 기다리면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면 좋은 매물은 팔리고, 좋은 자리는 채워지고, 좋은 타이밍은 지나간다. 최적 중단 문제의 핵심은 결국 이 균형이다. 더 볼 것인가, 지금 결정할 것인가.

고백도 감정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보면 간단하다. 지금 말할 것인가, 조금 더 기다릴 것인가.

너무 빨리 고백하면 정보가 부족하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와 있는지, 단순한 친절을 호감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 경우 고백은 일종의 조기 투자다. 수익 가능성은 있지만, 데이터가 부족하다.

반대로 너무 늦게 고백하면 정보는 많아진다. 상대의 취향, 반응, 말투, 연락 빈도, 사소한 신호들을 더 많이 관찰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사이에 시장 상황이 변한다는 점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할 수도 있고, 나에 대한 감정이 우정으로 고착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타이밍이라는 모호하지만 강력한 변수가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고백은 정보를 더 모을 것인가, 지금 행동할 것인가의 최적 정지 문제로 볼 수 있다. 최적 중단 문제의 대표적인 예가 이전에 다뤘던 비서 문제다.

문제는 기다림에도 비용이 있다는 점이다. 하루 더 기다리면 정보는 조금 늘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비용도 발생한다. 관계가 안정적인 친구 사이로 굳어질 수 있고, 상대가 나의 태도를 무관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혹은 그냥 용기가 증발한다. 인간의 결심은 생각보다 휘발성이 강한 자원이다.

그러므로 성공 확률이 충분히 높아졌고, 추가로 기다려서 얻는 정보의 가치보다 타이밍을 놓칠 위험이 커졌다면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충분히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고백에는 확률표가 없다. 상대가 얼마 이상의 호감을 보이면 고백한다 따위의 규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모두가 엑셀을 켜고 연애했을 것이다. 문제는 감정이 수치화되지 않는다는 데 있고, 더 큰 문제는 수치화되지 않는데도 계속 수치화하려 든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이런 사고방식은 유용한 데가 있다. 관계는 관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관찰자가 실험에 개입해야 한다. 고백은 최적해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미루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 시점을 알아차리는 문제에 가깝다. 충분한 신호가 있었고, 침묵의 비용이 커지고 있으며, 기다림이 신중함이 아니라 회피가 되기 시작했다면 그때는 중단해야 한다.

즉, 최적 중단 문제의 관점에서 고백은 정보 수집의 종료 선언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고백해 보는 건 어떨까?

‘현재까지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너도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참으로 낭만적인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