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는 웹의 흐릿한 JPEG라는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
2023년에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테드 창의 최근 사설이 화제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챗 GPT가 웹에 대한 열화판 같은 것이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통찰력이 엿보이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이렇게 챗 GPT에 열광하며, 챗 GPT의 가치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인간과 챗 GPT의 부정확함
일단, 챗 GPT와 유사하게 인간 또한 세상에 대한 부정확한 모델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계산 장치로 여겨지는 뇌를 가진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실들을 혼동하는지 생각해보면, 챗 GPT가 부정확한 정보를 내어 놓을 때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인간의 기억은 썩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한 사람의 기억뿐 아니라, 만델라 효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심지어 여러 사람의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가입한 사이트의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구구단 8단이 무엇인지 종종 헷갈리곤 한다. 나 또한 잘못된 사실을 진실인 양 이야기하다가 뒤늦게 내가 틀렸음을 깨달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100퍼센트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경험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를 챗 GPT에도 적용하는 것이 어떨까? 상대의 대답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항상 생각해보는 것이다.
챗 GPT의 가치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객관적 사실이나 정보를 빠르게 알아내야 하는 경우 피곤함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럼 챗 GPT를 왜 쓰는가? 왜 그것이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챗 GPT의 가치가 나무위키의 가치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때 나는 위키피디아보다는 나무위키를 먼저 검색해본다. 나무위키의 부정확함은 ‘꺼라위키’와 같은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그러한 부정확함이 오히려 어떤 생소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무위키는 부정확한 내용을 전달하지만, 동네 형이 설명해주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고 단순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가치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나무위키는 비유와도 유사하다. 비유라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선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부정확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비유와 부정확함의 가치
대표적인 예시는 리처드 파인만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전자기력을 설명하며 고무줄의 당기는 힘을 전자기력에 비유하면 그것이 얼마나 부정확하게 전자기력을 설명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분명 전자기력과 고무줄이 가지는 힘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거짓말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일정 수준까지의 이해를 돕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챗 GPT는 일종의 web에 대한 비유이자 대화 가능한 나무위키이며, 그 점에서 가치가 드러난다.
딥러닝 관점에서 본 챗 GPT
딥러닝적으로 표현하자면, 비유나 나무위키는 어떤 새로운 개념을 내 마음속 이해의 레이턴트 스페이스(latent space)에 매핑하기 위한 학습 초기의 가이드, 그라디언트(gradient)를 제공한다. 챗 GPT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JPEG 이미지가 비록 흐릿하더라도, 이미지에 그려진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적은 용량으로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챗 GPT도 마찬가지로 부정확할 수 있지만, 정보에 접근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첫걸음을 제시하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