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이론과 예술, 엔트로피
정보 이론은 정보의 양과 품질, 검색, 압축, 저장 및 전송 등과 같은 정보 처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수학적 분야로, 통신, 전산, 공학, 물리학, 심지어는 딥 러닝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된다.
정보 이론의 핵심 개념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정보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항상 가위만 내는 것보다는 가위/바위/보를 같은 확률로 내는 것이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정보량이 더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가위/바위/보를 같은 확률로 섞어서 내는 쪽이 예측하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유식하게 말하면, ‘정보 엔트로피가 크다’고 표현할 수 있고, 그 정도를 계산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게 예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보 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 작품 또한 정보의 일종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 관객이 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정보의 엔트로피 또한 존재할 것이다. 만약 작가가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요소를 사용하거나,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시키면 일종의 정보 손실이 일어난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의 엔트로피와는 다른 개념이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내 생각에, 엔트로피의 축에 예술 작품을 투영(Projection)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축에서 음수 방향으로 갈수록 대중성은 증가하고 양수 방향으로 갈수록 대중성은 감소한다. 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예술 작품의 엔트로피와 그 작품의 대중성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먼저 엔트로피가 낮아질수록 대중성이 증가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해보자. 만약 어떤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하게 표현된다면, 많은 관객의 혹평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일반인 다수는 해석의 여지가 모호한 것보다는 분명한 쪽을 선호한다. 이는 작품의 모호함이 증가할수록 엔트로피가 높아져 정보를 해석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에 익숙한 사람, 예를 들어 평론가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작품을 해석하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에 모호함 속에서도 본래의 의미, 정보를 추출하는데 능하다. 즉, 엔트로피가 큰 작품도 문제없이 소화해 내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둘 중 무엇이 더 좋다고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극단으로 갈수록 위험하다. 만약 작품의 엔트로피가 너무 낮아서 작가의 의도가 누구에게든 투명하게 해석돼 버린다면, 한때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투명드래곤’처럼 유치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엔트로피가 높아 작품을 해석하기 너무 어려워진다면,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처럼 의미 없는 노이즈와 다를 바 없게 취급받고 많은 사람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예술 작품은 때로는 분명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때로는 아주 모호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예상되는 관객에 걸맞는 적절한 엔트로피를 가지고 존재할 것이다.
예술 작품의 엔트로피를 측정하려는 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측정하고 정량적인 값에 기반하여 평가가 이뤄진다면 평론가와 대중 사이의 간극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 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