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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페이스북에 적은 글을 옮겨왔습니다.

인공신경망의 비약적인 성능 발전으로 인해 공학자가 아니더라도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단어만 자주 들을 뿐이지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은 무언가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오해를 푸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겠으나, 요새 들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것을 이용하고 부풀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터 베냐민식의 표현을 하자면 인공지능이라는 단어에는 ‘아우라’가 존재한다. 마치 인간과 대등하거나 더욱 뛰어난 인격체가 의도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신경망’이나 ‘학습’, ‘예측’과 같은 단어들 또한 네트워크가 인간처럼 생각하며 인격과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글쎄,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딥 러닝 기반의 인공지능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행렬곱과 덧셈, 그리고 비선형성을 위한 활성화 함수가 층층이 쌓여 있는 형태이다. 학습 과정에서 미분을 통해 곱하는 숫자와 더하는 숫자를 바꿔나가는데 학습이 끝나고 나면 이런 연산만으로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물론 네트워크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복잡한 연산이 추가될 수 있으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네트워크는 이렇게 간단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네트워크는 인격보다는 계산기에 가깝다. 내가 학습시킨 많은 네트워크는 나를 죽이려고 하거나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기보다는 인풋으로부터 착실하게 아웃풋을 계산했다.

네트워크의 지능에 대하여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지능이 없다고 보아야 할까? 그것 또한 아니다. 내 생각에 네트워크에는 지능이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생각하는 지능의 허들이 굉장히 낮다는 점이다. 롤프 파이퍼와 조쉬 봉가드의 ‘How the Body Shapes the Way We Think’에는 ‘스위스 로봇’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스위스 로봇은 바퀴와 안테나 두 개가 달린 매우 단순한 형태의 로봇이다. 이 로봇은 전진하다가 한쪽 안테나에 무엇이든 부딪히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간단한 알고리즘으로 동작한다. 그런데 이 로봇을 박스가 어질러진 방에 두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박스를 군집화(clustering)하며 지능적인 행동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 로봇의 안테나의 각도를 살짝 바꾸면, 이러한 현상을 더는 관측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지능은 어디에 있는가?
지능은 안테나 각도에 있을까? 아니면 이 시스템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비슷한 맥락으로 존 설의 유명한 사고실험 ‘중국어 방’ 또한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방에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역할은 누군가 와서 중국어로 된 질문이 적힌 쪽지를 건네주면, 그 중국어의 모양을 보고 정답으로 정해져 있는 중국어 답변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두 사례 모두에서 지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한데 그 시스템이 지능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는 지능이 무엇인지,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명확하게 알지도 못하며,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인격을 가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능과 인격의 차이

나는 개인적으로 마빈 민스키가 마음의 사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지능적인 행동 또한 단순한 모듈들의 작용으로 기계처럼 이뤄지는 것이라 믿는다. 각각의 모듈은 마치 네트워크처럼 상위 개념에 대해서 전혀 모름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모여 하나의 지능을 이룬다.

이런 의견은 앞서 이야기한 네트워크엔 인격이 없다는 말과 상충하는데,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나는 네트워크에도 지능이 있지만 그 정도가 매우 약해서 사실상 계산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우며, 인격을 논하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대체하기에는 충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생각보다도 복잡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굳이 인간처럼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숫자를 분류하는 일은 충분히 해낼 수 있고, 단순하고 전산화가 가능한 업무일수록 약인공지능에 의해서 쉽게 대체가 가능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예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인격 아우라가 사라진 인공지능을 이용한 예술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것의 인격이나 지능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그것이 보여주는 스타일에 관심 있다고 해야겠다. 특히 내겐 GAN을 이용한 이미지들이 흥미로운데, 공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아티팩트(의도하지 않은 인공적인 느낌을 주는 에러 같은 것)로 여겨질 만한 부분이 오히려 재미있고 새로운 스타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순수예술이 아닌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더 이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불어 예술의 맥락에서 네트워크를 시각화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나는 네트워크의 활성화 정도를 보여주거나 학습 과정을 시각화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줌으로써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해체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리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런 시도들은 만연한 오해를 풀고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틈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