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100명의 비서 지원자 중에서 단 한 명의 우수한 인재를 뽑아야 하는 면접자라고 해보자.

지원자 100명은 무작위 순서로 줄을 선다. 당신은 한 명씩 면접을 본다. 한 번 거절한 지원자는 다시는 볼 수 없다. 반대로 한 명을 채용하면, 그 뒤에 서 있던 사람은 영영 볼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서 최고의 지원자를 뽑으려면 어떤 전략을 가져가야 할까?

이 문제는 ‘비서 문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최적 정지 문제다.

이 문제에는 이미 해답이 존재한다. 확률적으로 최적의 방법은 약 37%의 지원자를 보고 모두 거절한 뒤, 37%의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원자를 기준으로 삼아 해당 지원자보다 1점이라도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채용하는 것이다.

비서 문제의 최적 전략이 1/e임을 보이는 증명
굳이 증명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증명은 똑똑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이 문제는 연애와 닮은 구석이 있다. 한 번에 하나의 연인을 사귄다는 점 (일반적으로), 헤어지면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점 (일반적으로), 순차적으로 다음 사람을 만나게 되고, 최적의 상대를 만나면 연애를 그만두고 결혼으로 엔딩을 맺는다는 점 (일반적으로).

그렇다면 사랑에도 37% 전략이 통할까?

이 전략이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나의 n, 즉, 내가 평생 만날 수 있는 연애 대상의 숫자를 잘 예측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의 점수를 잘 예측해야 한다.

비서 문제에서 n은 명확하다. 지원자는 100명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n은 알 수 없다. 나는 평생 몇 명을 만나게 될까? 지금 만나는 사람이 세 번째인지, 일곱 번째인지, 아니면 마지막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통계가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미혼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6 연애와 행복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남녀의 평균 이성교제 횟수는 3.2회였다. 만약 이들이 최적 정지 문제에서처럼 모두가 가장 합리적인 시점에 멈추었다고 가정하면, 대한민국 미혼남녀가 평생 마주하게 될 평균 연애 후보군의 수는 약 8.6명, 대략 9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 계산은 진지한 통계라기보다 수학적 농담에 가깝다. 우선 이 조사는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아직 결혼이라는 정지점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평균 이성교제 횟수 3.2회는 인생 전체의 연애 횟수가 아니라, 현재까지 지나온 연애 횟수이다. 비서 문제의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전체 후보군 n명 중 몇 번째 후보까지 지나왔는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아직 20% 지점에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80% 지점에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곧 멈출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앞으로 훨씬 더 긴 탐색을 이어갈 수도 있다.

따라서 평균 연애 횟수가 곧 나의 n은 아니다. 3.2라는 숫자는 흥미로운 출발점일 뿐, 내가 평생 몇 명을 사랑하게 될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세 번의 연애 끝에 평생의 짝을 만나고, 누군가는 열 번을 만나도 아직 자신을 잘 모른다. 누군가는 첫사랑과 결혼하고, 누군가는 긴 결혼 뒤에야 진짜 사랑을 배운다. 현실의 연애에서 n은 사전에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전체 후보가 몇 명인지도 모른 채, 매번 이번 사람이 몇 번째 사람인지도 모른 채, 그때그때의 마음과 경험으로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더욱 어렵다. 상대방의 점수는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결혼정보회사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나이, 학력, 직업, 소득, 자산, 외모, 가족 배경, 거주지, 종교, 결혼관 같은 것들이 점수표 위에 오른다. 조건은 비교적 숫자로 만들기 쉽다. 연봉은 숫자고, 키도 숫자고, 나이도 숫자다. 학력과 직업도 등급화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마저 어느 정도는 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정말 중요한 것들은 숫자로 바꾸기 쉽지 않다.

이 사람과 있으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가, 화가 났을 때 서로를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는가, 말하지 않은 마음을 너무 오래 방치하지 않는가, 서로의 속도가 다를 때 기다릴 수 있는가, 함께 있는 시간이 나를 소모시키는가 혹은 회복시키는가, 삶이 어려워졌을 때 같은 편이 될 수 있는가.

이런 항목에는 점수를 매기기 어렵다.

다정함 87점, 유머 73점, 갈등 해결력 91점.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랑은 대체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다정함은 평소에는 50점처럼 보이다가도, 내가 무너지는 날 100점이 된다. 어떤 사람의 유머는 모두를 웃기지는 못해도 나 하나는 살린다. 어떤 사람의 단점은 객관적으로는 작아 보여도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결핍은 이상하게도 내가 기꺼이 품고 싶은 것이 된다. 최적의 상대란 처음부터 100점짜리로 나타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비서 문제의 세계에서는 선택이 단순하다. 지원자는 지원자이고, 면접자는 면접자다. 지원자의 능력은 정해져 있고, 면접자는 그 순위를 알아맞히면 된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는 평가하는 사람도 평가받는 사람도 계속 변한다. 오늘의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5년 뒤의 나에게도 좋은 사람일지는 모른다. 반대로 처음엔 평범해 보였던 사람이, 긴 시간을 통과하며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에 37% 전략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처음 37%를 연습용으로 써버릴 수도 없고, 이후에 나타난 사람이 이전보다 1점 높다고 해서 바로 결혼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사람은 지원자가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비교표에 체크하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비유가 완전히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37% 전략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최고의 사람을 계산하라’가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완벽한 선택을 하려 하지 말라에 가깝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기준을 배운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사랑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별은 실패가 아니다. 어떤 후회는 내가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지 알려준다. 어떤 좋은 기억은 앞으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감각을 남긴다. 그러니 몇 번의 지나간 사랑을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비서 문제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구간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또, 비서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비교를 멈춰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언제나 가능하다.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이 있고,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은 늘 내가 만난 사람보다 많다. 그러나 인생은 최적 정지 문제와 같이, 무한한 후보군을 끝까지 훑어볼 수 없다.

비서 문제는 우리에게 최적의 정지 시점을 알려준다. 하지만 인간사는 너무 복잡하다. 사랑에는 타이밍이 있고, 운이 있고, 가족이 있고, 돈이 있고, 건강이 있고, 각자의 상처가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나쁜 시절에 만나면 놓칠 수 있고, 평범한 인연도 서로의 노력으로 깊어질 수 있다. 수학은 깔끔하지만, 삶은 수학보다 너저분하다. 그리고 그런 성질이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 모든 곳에서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될 수 있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을. - 이동진 평론가

사랑은 언제 멈추는 것이 가장 이득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라면 멈추는 일이 아쉽지 않은가를 묻는다. 어쩌면 좋은 사랑이란 최고의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끝없는 탐색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 세상 어딘가에 더 나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지금 내 옆의 사람을 선택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