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에르되시 문제를 풀어내는 AI를 보며 든 생각.

수학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관점에서 수학자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찾아내는 사람에 가깝다. 정리와 개념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임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리계가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위치들이다. 인간은 그 위치에 이름을 붙이고, 기호를 만들고, 증명을 구성하지만, 그 위치 자체를 새로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수학의 개념은 하나의 위치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공리계가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명제와 개념들은 일종의 공간을 이룬다. 인간은 그 공간 안의 위치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 위치 자체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수, 덧셈, 항등식, 정리들은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발견되지만, 발견되기 전과 후의 참값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1+1=2라는 명제는 인간이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도,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이 점에서 수학의 공간은 시간에 대해 고정되어 있다. 위치를 샘플링하는 함수에 시간 t가 본질적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수학을 표현하는 언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문제, 연구의 방향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접근 방식이 변하는 것이지, 수학적 대상의 위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떤 시점에 어떤 경로로 그 공간을 탐색할 뿐이다. 이미 있는 공간을 늦게 발견하거나, 더 효율적으로 기술하거나, 다른 체계와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은 역사 속에서 전개되지만, 그 발견의 대상은 비교적 불변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의미의 공간은 다르다. 의미는 대상 자체에 고정되어 있다기보다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개인은 나이를 먹고, 기억을 쌓고, 상실을 경험한다. 사회는 사건을 겪고, 언어와 감각은 이동한다. 따라서 같은 대상도 다른 시간에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같은 문장, 같은 이미지, 같은 음악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변하면 다른 것으로 읽힌다. 예술은 바로 이 변화하는 의미의 공간 위에 놓여 있다.

예술 작품의 물질적 형태는 고정될 수 있다. 캔버스 위의 색, 악보 위의 음표, 영화의 프레임, 소설의 문장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떤 그림은 한 시대에는 장식이고, 다른 시대에는 정치적 기호가 된다. 어떤 노래는 처음에는 유행가였지만 시간이 지나 세대의 기억이 된다. 어떤 문장은 개인의 특정한 상실 이후에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가진다. 예술의 공간은 대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시간에 의존하는 함수가 그 안에 들어온다.

따라서 수학과 예술의 차이는 단순히 논리와 감성의 차이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공간의 성격이 다르다. 수학의 공간은 고정된 구조에 가깝고, 예술의 공간은 시간에 따라 갱신되는 의미의 장에 가깝다. 수학에서 인간은 발견자에 가깝다. 예술에서 인간은 의미의 조건이다. 인간이 없으면 수학적 명제의 참은 여전히 남을 수 있지만, 아름다움, 슬픔, 모욕감, 위로, 시대적 감각 같은 것은 성립하기 어렵다.

AI는 많은 데이터로부터 가능성의 공간을 학습한다. 어떤 영역이 안정된 규칙과 반복 가능한 구조를 가질수록, AI는 그 공간을 더 잘 근사할 수 있다. 수학, 코드, 논리, 과학적 가설, 디자인 패턴, 언어적 조합은 모두 어느 정도 고정된 구조를 가진다. AI는 그 구조를 직접 이해한다기보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그 공간의 분포를 학습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위치를 샘플링한다. 따라서 인간이 오래 걸려 찾아내던 정리, 코드, 설계, 문장, 조합은 AI에게 학습된 공간 안의 한 점으로 처리된다. AI의 강점은 단순히 빠르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비교적 고정된 공간을 데이터로부터 근사하고, 그 안의 위치들을 빠르게 탐색하는 능력에 있다.

그러나 가능한 것을 생성하는 능력과 그것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능력은 다르다. AI가 그림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쓸 수 있다고 해도, 그 결과가 왜 지금 중요한지, 왜 어떤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지, 왜 어떤 시대의 감각을 정확히 건드리는지는 결국 인간의 시간성과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산출물 자체가 아니라, 산출물이 인간의 변화하는 삶과 만나는 방식이다.

그래서 AI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히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이 남는다. 예술은 그 인간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표면일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무엇을 만드는 존재로만 정의되지 않을 수 있다. AI가 가능한 것들의 공간을 넓히고, 그 안에서 수많은 결과를 산출한다면, 인간의 역할은 그중 무엇이 의미 있는지 선택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결국 질문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로 옮겨간다. 전자는 점점 기계가 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된다. 후자는 인간이 시간 속에서 계속 다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수학의 공간은 발견될 수 있는 위치들의 불변적 배열에 가깝다. 예술과 의미의 공간은 인간이 변하기 때문에 함께 변한다. AI가 가능한 것들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만들어낼수록, 인간에게 남는 것은 그 가능성들 사이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