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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소 엉덩이에 눈을 그리면 사자가 덤벼들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게 와 닿는 부분은, 엉덩이에 십자 그림이 있는 소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소보다 덜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다. 보자마자 바로 GAN이 생각났다. GAN은 ‘적대적 생성 네트워크’의 약자인데 두 개의 네트워크를 서로 경쟁시켜 원하는 결과를 생성하게 하는 심층학습 모델을 말한다. 두 네트워크는 생성자(Generator)와 구분자(Discriminator)로 나뉜다. 흔하게 쓰는 비유로 생성자는 위조범이고, 구분자는 감별사라고 생각하면 쉽다. 학습 단계에서 위조범 네트워크가 진짜 지폐 사이에 자기가 만든 위조지폐를 끼워 넣으면 감별사가 무엇이 위조지폐인지를 판별한다. 학습 초기 단계에서 위조범은 랜덤한 시드로부터 노이즈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나 감별사도 위조범과 마찬가지로 학습이 덜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노이즈와 진짜 지폐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상적으로 학습될 경우 시간이 갈수록 위조범은 점점 더 진짜 같은 지폐를 만들어내고, 감별사는 진짜 지폐와 위조지폐를 잘 구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감별사가 초반에 학습이 더 잘 된다. 심지어 감별사가 너무 빨리 잘 학습해버려서 위조범이 아예 학습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위조범은 학습 과정 내내 실제 지폐를 한 번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조범은 오로지 감별사의 감별 결과만 보고 조금씩 그림을 바꿔가며 감별사를 속일 수 있는 지폐를 만든다. 당연히 위조범의 일이 더 어렵기에 이 균형을 잘 맞춰 비슷한 속도로 학습해서 계속 학습이 진행되게 만드는 것이 GAN 모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생물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런 위조범과 감별사의 관계를 소와 사자 사이에서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소 엉덩이에 그려진 엉성한 눈을 보고 사자는 속는다. 심지어, 눈 같지도 않은 것을 그려도 사자가 간혹 속는다. 가짜 눈에 속아서 먹이를 먹지 못하는 사자는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높다. 세대가 지나며, 사자가 파라미터가 한 스텝 업데이트된다. 가짜 눈에 속지 않고 배를 채워 자식을 남긴 다음 세대의 사자는 조금 더 가짜 눈을 잘 구분할지도 모른다.

첨부한 사진은 7만 개의 얼굴 이미지 데이터셋을 가지고 직접 만든 GAN으로 각각 1에폭, 2에폭, 3에폭 그리고 50에폭 학습시켜 생성한 이미지이다. 1에폭에서는 얼굴이라기보다는 패턴에 가까운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엉성한 이미지를 줘도 사자가 소 엉덩이에 그려진 십자 모양에 속는 것처럼 구별자가 속을 때가 있다. 2, 3 에폭의 결과를 보면 사람이 볼 때 여전히 사람 얼굴 같지는 않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사람 얼굴에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보기에 허접한 얼굴이라도 소 엉덩이의 눈처럼, 구별자만 속일 수 있다면 그걸로 학습하기엔 충분하다. 아마 의태 하는 동물들도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경우엔 어떨까? 군대에서 한창 책 읽을 적에 제프리 밀러가 쓴 연애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불쏘시개 냄새와는 다르게 꽤 재미있는 진화심리학 대중서적인데 이 연구결과를 보고 갑자기 생각났다. 저자는 오늘날 인간이 뛰어난 지능을 가지게 된 것이 ‘성’ 때문이라 주장한다.

공작새 수컷은 화려한 깃털을 가지고 있다. 그 깃털을 보면 이렇게 눈에 띄고 쓸모없는 부위를 가진 동물이 어떻게 지금까지 진화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공작새 꼬리는 생존에 무슨 이득을 주기에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많은 가설이 있으나 다윈은 이러한 진화가 성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더 화려한 꼬리를 가진 공작을 암컷이 좋아했기 때문에 유전자를 남겨 수컷의 꼬리가 더 화려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제프리 밀러는 다윈의 주장에서 한층 더 나아가 인간의 언어, 예술, 도덕, 창의성 등의 지능적 행위들이 성 선택 과정에 의해 이뤄진 성과라고 다양한 원리를 들어 주장한다. 마치 공작새 꼬리와 같이, 인간의 지능적 행동은 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이토록 정교하게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생성자와 구별자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지능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지능이 필요하다. 또한, 한 인간이 지능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다. 둘은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렇게 보면 결국 나 또한 GAN처럼 나의 조상들이 상호작용하며 선택한 결과물이다. 나와 묘하게 얽혀있는 GAN을 생각하다 보면 아주 즐겁다.

주의점: 네트워크가 마치 인격과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것은 이해를 쉽게 돕기 위한 비유이며, 실제로 생성자는 구별자를 성공적으로 속였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고, 구별자도 마찬가지로 슬퍼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구별자와 생성자는 연산의 집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