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미술 교과서
2023년에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7년 전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영상디자인과 학부생이었던 나는 주변의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디자이너가 지금 하는 많은 일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당시 나는 인공지능이 디자이너처럼 ‘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수행하는 많은 업무가 지능이 없더라도 자동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한술 더 떠서 나는 인공지능이 대본도 써 주고, 편집도 해 주고, 영상도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에 감독 이름 대신 어떤 인공지능을 사용했는지를 홍보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술만 먹으면 매일 그 소리를 해 대니 많이들 질려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또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맞는 말이긴 하다.
7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이제 ‘지적인’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인류는 지능이 무엇인지, 무엇이 지적인 행위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지금의 GPT-4가 최소 인류 절반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내가 옳았다고 뽐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그렇다 ㅎㅎ)
그런 건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옳았든 틀렸든 간에 인공지능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고, 이 급류를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미래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 생각했던 나는 내 인생을 투자금으로 삼아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어쩌다 보니 박사과정까지 하게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덕에 나도 급류에 올라탈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도 그 급류의 중심에 서 있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나도 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OpenAI에서는 수억을 호가하는 서버를 수천 대 가지고 GPT를 학습시켰다. 이러한 규모는 국내 빅테크조차도 갖추지 못하는 정도이다. 기업조차 이럴진대 연구실은 오죽할까. 서버조차 없는 연구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답답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동시에 작은 단위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을까 두근거림도 있다.
생각해보면 OpenAI 또한 한때는 스타트업이었잖는가. 물론 태생부터 다르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서도…
아무튼 세상이 요지경이다. 장담하건대 OpenAI는 역사책에 실리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기록될까?
미래의 미술 교과서에는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