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함의 정의
2026년 2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세상을 바꾼 수많은 천재를 곁에서 지켜본 그였기에 모두가 특정 인물의 이름을 기대했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이름을 호명하는 대신, 우리가 오랫동안 신봉해온 ‘똑똑함의 기준’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지능의 정점으로 여겨졌던 영역, 복잡한 프로그래밍이나 고난도의 기술적 추론이 높은 IQ를 갖추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소수 전문가만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이러한 기술적 난제들을 인공지능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기술적 숙련도가 곧 지능의 고저를 의미하던 시대는 끝났고, 따라서 ‘똑똑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
그가 정의한 새로운 똑똑함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술적으로 날카로운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 둘째, 말하지 않은 것과 알 수 없는 것까지 상상해내는 사람. 셋째, 미래에 무엇이 오는지 예측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최고의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흔히 그를 수학의 전지전능한 천재로 기억하지만, 정작 아인슈타인 본인은 “나는 수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다(어디까지나 동료들에 비해서). 실제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정립할 때, 그는 친구인 수학자 마르셀 그로스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공간이 휠 수 있다는 혁명적인 통찰을 던진 게 수학자인 그로스만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본질을 꿰뚫어 본 아인슈타인이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수학과 과학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아인슈타인이 겪었던 이 역할의 분담을 전 지구적 규모로 더욱 깊게 확장하고 있다. 강화학습 기반 시스템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문제를 풀고, AI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며 복잡한 물리 방정식의 해를 찾는다. 계산과 형식적 추론이라는 수학적 테크닉은 이제 기계라는 거대한 조력자의 영역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유한하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품는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 지성의 축소가 아니라, 중심의 이동이다. 아인슈타인에게 그로스만이라는 조력자가 있었듯, 우리에게는 AI라는 고성능 계산기가 생겼다. 이제 기술적 역량은 단순히 계산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기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 한계를 파악하며, AI가 내놓은 수많은 결과물 중 무엇이 ‘진짜 인간에게 의미 있는 정리’인지 가려내는 직관으로 재구성된다.
무엇을 계산할 것인지 결정하는 통찰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는 패턴을 탐색할 수 있지만, 어떤 패턴이 세계를 더 깊이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 발견이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판단하는 일은 인간의 맥락과 공감을 동반한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이 원자폭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며 고뇌했던 것처럼, 기술의 적용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책임을 지는 선택은 AI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아직까지는).
따라서 AI 시대에 ‘가장 똑똑한 사람’의 정의는 바뀐다. 그는 더 이상 IQ가 가장 높거나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능력은 이미 기계와 공유된 평범한 능력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천재는 기술이라는 파도 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내는 날카로운 직관과, 타인의 삶을 고려하는 감각,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판단력을 결합한 사람이다.
AI가 증명을 작성하고 과학적 가설을 제안하는 시대, 인간의 지성은 다른 층위에서 평가받는다. 새로운 기준 아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어쩌면 형편없는 수능 점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더 많은 답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던질 ‘가장 가치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그 질문이 가져올 결과의 무게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젠슨 황이 이름 대신 정의를 문제 삼은 이유도, 바로 이 거대한 지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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