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의 한계가 곧 AI가 만드는 세계의 한계다
2026년 2월에 인스타 스토리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흑백요리사를 처음 접했을 때, 안성재 쉐프의 캐릭터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목한 건 그가 사용하는 어휘다. 그는 반복적으로 ‘채소의 익힘이 이븐하다’, ‘킥이 부족하다’, ‘텍스처의 조화’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요리의 물리적 상태와 미각적 완성도를 정밀한 단위로 쪼개어 판단해 전문가만의 해상도를 드러내는 도구다. 비전문가가 단순히 ‘맛있다’거나 ‘덜 익었다’는 표현으로 뭉뚱그려 표현할 때, 전문가는 정밀한 표현을 통해 현상을 분절하고 구조화한다. 안성재 쉐프가 보여준 심사는 전문성이 어떻게 언어로 발현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러한 양상은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디자이너가 ‘누끼를 딴다’거나 ‘블랙이 탔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미지의 분리 상태나 암부의 디테일 손실이라는 복잡한 물리적 상태를 단번에 공유하는 고효율의 압축 기술이다. 과학자들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이라는 언어를 빌려 사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상을 일상어로 길게 늘어놓는 대신,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어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과거의 전문성은 특정 기술을 물리적으로 수행하는 숙련도에 기반했다. 코딩 실력, 제도 능력, 계산 속도 등이 전문가의 척도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실행의 영역을 대체하는 현재, 전문성의 본질은 수행에서 정의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전문성이란 해당 분야의 체계화된 언어를 습득하고, 이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규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설파했다. 이 통찰은 현대의 전문성이라는 맥락에서도 유효한 의미를 갖는다. 분야별 전문 용어는 복합적인 개념을 고도로 압축한 데이터 프로토콜의 성격을 띠며, 전문가는 이 언어를 활용해 현상을 보다 세밀한 해상도로 관찰한다. 특정 분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암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분야의 고유한 논리 체계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러한 언어적 토대가 부재할 경우, AI라는 고성능 엔진을 보유하고도 그 잠재력을 충분히 이끌어내는 데 제약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가 구사하는 언어의 정밀도가 곧 AI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의 구체성을 결정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와 사기꾼을 구분하는 지점은 언어를 다루는 태도에서 드러나곤 한다. 사기꾼은 전문 용어의 껍데기를 권위를 세우거나 논점을 흐리는 은폐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화려한 수사를 나열하지만, 그 언어 이면에 존재하는 논리적 인과관계나 실질적 구현 원리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반면 진정한 전문가는 언어를 소통과 해결의 도구로 운용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복잡한 용어를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거나 일반적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즉, 언어를 단순히 사용하거나 나열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그 언어가 담고 있는 논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한 차별점이 된다.
인간과 기술의 인터페이스가 자연어 중심으로 수렴하면서, 역설적으로 특정 분야의 언어적 숙련도는 더욱 유의미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전문가는 ‘무엇을’과 ‘왜’를 명확히 함으로써 AI의 실행 방향을 설정한다. 이때 전문 용어는 AI와의 소통 오차를 줄이는 규격 역할을 하며, 출력된 결과값이 의도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주요한 검증 기제로 작용한다. 기술적 실행이 자동화될수록 인간의 역할은 언어를 통해 의도를 정밀하게 투사하는 설계의 영역으로 집중된다.
전문성을 갖춘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사물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시각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수행의 비중이 줄어드는 시대일수록 현상을 어떻게 이름붙이고 구조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진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자신의 의도를 기술적 실체로 전환하는 핵심적인 매개체가 된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의 한계가 곧 우리가 AI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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